이달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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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균 시인 우리는 늘 클래식을 듣고 시조 한 수를 읊으며 절제된 의미심장한 글을 읽고 살 수만은 없다. 때로는 폭풍우처럼 밀려드는 한탄을 참을 수 없고,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고 욕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맨얼굴로 대면하고 말할 수 없어서 뒤에서 상사나 시어머니의 뒷담화를 하기도 한다. 뒷담화도 때로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뒷담화하지 말고 탈(가면)을 쓰고 당신 할말 있으면 해보시오 하고 판을 깔아준 것이 탈춤이다.억눌리고 한스러운 삶을 살아가면서 제일 힘들 때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하지 못할 때다. '입틀막'의 사회는 압이 차오르면 터지게 된다. 그래서 그 압이 차지 않고 옆으로 김이 새어나가게 해야 한다. 또 우리는 할말을 하고 살 때 비로소 살맛이 나지 않는가?환장하게 힘들 때, 우아한 어조로만 말할 수 없고 노래할 수 없다. 직설적으로 에두르지 않고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를 때 폭발하지 않는다. 기쁨과 행복이 넘칠 때 굳이 해학을 가져올 필요는 없다. 삶이 힘들어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이 해학이다. 해학을 통해서 쌓인 스트레스를 웃음으로 풀고, 그 웃음을 동반해서 내일을 위해 한 발 나가는 것이다. 탈춤은 해학과 재담과 풍자의 끝판왕이다. 탈춤 한마당을 놀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성 오광대 놀이를 주제로 한 이달균 사설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는 절제된 형식, 은유와 상징만으로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을 통해서는 삶의 숨겨진 고달픔과 애환, 억울함을 풀 수 없다. 직설적으로 속 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 삶은 살아난다. 말(공연)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시원해진다. 뭔가 쌓인 한을 훌훌 털고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된다.왜 이 시대에 '말뚝이 가라사대'인가? 많고 많은 문학 장르 중에서 사설시조로 쓴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가? '시인의 말' 중에서 '왜 오광대놀이인고 하니'를 들어보자. '익살맞은 몸짓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말뚝이 없는 탈마당은/ 재미는 고사하고 막힌 가슴 [키이우=AP/뉴시스] 31일(현지 시간) 러시아의 로켓 공격이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시민들이 대피소로 활용되는 지하철역에 모여 휴식하고 있다. 2025.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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