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의 열전] 이로운 사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sans339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25-08-03 21:05

본문

쿠팡퀵플렉스 [땀의 열전] 이로운 사람, 철도노동자 정용진씨②[이전 기사] 매년 30명씩 죽어나가던 현장... "바꿔보고 싶었다" ▲ 기관차를 검수하는 일을 하는 정용진은 2003년 4.20파업을 앞두고 수색차량지부장이 되었다.ⓒ 정용진 제공철도노조 민주화를 향한 발걸음은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갔다. 2000년 1월 대법원은 철도노조의 3중 간선제(세 번의 간접선거를 거쳐 철도노조 위원장을 선출하는 방식)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01년 5월 조합원들이 직접 뽑은 첫 민주집행부가 출범했다.철도 안에 산적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던 도중 철도노조는 2002년 2월 25일 파업에 돌입한다. 김대중 정부가 가스, 발전과 함께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자 이를 막기 위해 벌인 집단행동이었다. 이틀간의 파업 끝에 민영화 추진을 온전히 막지는 못했지만 근무형태 변경은 이끌어냈다.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3조2교대로 전환하는 데 합의했다. 1989년 주 44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이후 주 5일(40시간) 근무제가 논의되는 상황에서 여전히 주 62시간을 일하고 있던 철도노동자들로선 제일 큰 염원이 이루어진 셈이었다.파업 후가 더 중요했다. 철도청은 합의 이행보다 노조 탄압에 열을 올렸다. 파업참여자들에 대한 고소·고발과 대규모 징계를 벌였다. 기존 일터에서 먼 거리 지역으로 전출을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용진이 속한 차량사업소에서도 지부장이 해고됐다. 새로 지부장을 뽑아야 했다.용진이 후보로 나섰다. 경선이었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신협국장을 하다가 현장으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선거에 나서도 당선을 자신할 수 없었다. 동기들도 '떨어질 걸 왜 나가냐?'는 반응이었다. 굴하지 않고 용진은 진심을 꺼내 들었다. "노동조합을 지켜내겠다"는 마음 속 다짐을. 조합원 한 명 한 명을 만나갔다.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조합원이라도 빠짐없이. 만나면 "날 안 찍어도 되는데 혹시 내가 당선되면 집행부를 같이 합시다"라는 제안부터 했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2002년 가을 용진이 수색차량지부장이 됐다. 선거운동 제안대로 상대편을 지지했던 조합원들도 함께 집행부를 꾸렸다.용진이 지부장이 된 뒤로도 철도노조는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땀의 열전] 이로운 사람, 철도노동자 정용진씨②[이전 기사] 매년 30명씩 죽어나가던 현장... "바꿔보고 싶었다" ▲ 기관차를 검수하는 일을 하는 정용진은 2003년 4.20파업을 앞두고 수색차량지부장이 되었다.ⓒ 정용진 제공철도노조 민주화를 향한 발걸음은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갔다. 2000년 1월 대법원은 철도노조의 3중 간선제(세 번의 간접선거를 거쳐 철도노조 위원장을 선출하는 방식)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01년 5월 조합원들이 직접 뽑은 첫 민주집행부가 출범했다.철도 안에 산적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던 도중 철도노조는 2002년 2월 25일 파업에 돌입한다. 김대중 정부가 가스, 발전과 함께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자 이를 막기 위해 벌인 집단행동이었다. 이틀간의 파업 끝에 민영화 추진을 온전히 막지는 못했지만 근무형태 변경은 이끌어냈다.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3조2교대로 전환하는 데 합의했다. 1989년 주 44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이후 주 5일(40시간) 근무제가 논의되는 상황에서 여전히 주 62시간을 일하고 있던 철도노동자들로선 제일 큰 염원이 이루어진 셈이었다.파업 후가 더 중요했다. 철도청은 합의 이행보다 노조 탄압에 열을 올렸다. 파업참여자들에 대한 고소·고발과 대규모 징계를 벌였다. 기존 일터에서 먼 거리 지역으로 전출을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용진이 속한 차량사업소에서도 지부장이 해고됐다. 새로 지부장을 뽑아야 했다.용진이 후보로 나섰다. 경선이었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신협국장을 하다가 현장으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선거에 나서도 당선을 자신할 수 없었다. 동기들도 '떨어질 걸 왜 나가냐?'는 반응이었다. 굴하지 않고 용진은 진심을 꺼내 들었다. "노동조합을 지켜내겠다"는 마음 속 다짐을. 조합원 한 명 한 명을 만나갔다.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조합원이라도 빠짐없이. 만나면 "날 안 찍어도 되는데 혹시 내가 당선되면 집행부를 같이 합시다"라는 제안부터 했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2002년 가을 용진이 수색차량지부장이 됐다. 선거운동 제안대로 상대편을 지지했던 조합원들도 함께 집행부를 꾸렸다.용진이 지부장이 된 뒤로도 철도노조는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민영화라는 뇌관이 다 제거되지 않은 상황에서 2003년 2월 임기를 시작한 노무현 정부는 철도구조개혁 관련법안을 추진한다. 이에 맞서 철도노조는 파업을 준비하고 4월 20일 파업 하루 만에 바로 노정합의를 이루어 쿠팡퀵플렉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75,710건 1330 페이지

검색